
온라인 중심으로 급변한 유통시장에서 대형마트만 야간 온라인배송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경쟁조건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 규제완화 측의 핵심 논리다.
반면 중소상인과 노동계에서는 대형마트까지 새벽배송 경쟁에 가세할 경우 골목상권과 지역 유통업에 미치는 영향뿐만 아니라 심야작업 확대 가능성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관련 단체들은 8월27일 기자회견을 열어 대형마트 새벽배송 허용에 반대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동시에 나온 ‘야간작업 제한법’
새벽배송시장 확대 움직임과 맞물려 야간작업자의 건강권 보호를 강화하는 입법도 추진되고 있다.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산업안전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과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발의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야간작업을 ‘0시부터 오전 5시까지의 시간을 포함해 연속 7시간 이상 수행하는 작업’으로 정의하고 야간작업을 건강장해 예방을 위한 보건조치 대상으로 명확히 규정하는 것이 골자다.
개정안에 따르면 1일 야간작업은 최대 10시간으로 제한된다. 1주 평균 기준으로는 하루 8시간을 초과할 수 없으며 주간 최대 야간작업시간도 48시간으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주 평균으로는 주 44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했다.
또한 야간작업 종료 후 최소 11시간의 연속휴식을 보장하고 연속 야간작업은 최대 3일, 월별 야간작업은 최대 12회로 제한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3일 연속 야간근무를 수행할 경우에는 기본 휴식시간 외에 추가적인 연속휴식도 부여하도록 했다.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개정안은 택배서비스종사자의 야간작업과 관련한 보호규정을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택배기사가 집화·배송 이외에 하역이나 분류작업까지 수행하는 것을 제한하고 계약에 따라 추가업무를 담당할 경우 서면합의를 통해 별도 대가를 지급하도록 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야간작업 제한에 대해서는 정치권과 업계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다. 건강권 보호와 과로방지를 위해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 있는 반면 획일적인 시간·횟수 제한이 야간근무자의 소득감소와 기업의 추가 인력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야당은 8월29일 업종 특성과 근로자의 선택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규제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현재 두 개정안 모두 국회 심의가 필요한 발의단계다. 콜드체인산업이 주목해야 할 부분은 정책의 찬·반보다 두 변화가 동시에 현실화됐을 때 나타날 물류운영 구조다. 대형마트 새벽배송이 허용될 경우 시장의 공급주체는 크게 늘어날 수 있다.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 등 대형마트는 전국에 점포망과 자체 물류망을 보유하고 있다. 기존 점포를 온라인 주문을 처리하는 마이크로풀필먼트센터(MFC) 또는 지역배송 거점으로 활용할 경우 별도의 대규모 물류센터를 구축하지 않고도 새벽배송망을 빠르게 확대할 수 있다.
특히 신선식품·냉장·냉동식품 비중이 높은 대형마트 상품구성상 새벽배송 확대는 자연스럽게 저온물류 수요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작업시간과 야간작업 횟수가 제한된다면 기존 인력을 장시간 투입해 주문 증가에 대응하는 방식은 어려워진다. 예를 들어 동일 인력이 야간에 상품입고→ 피킹→ 분류→ 상차→ 배송까지 연속 수행하는 모델보다는 각 작업을 기능별로 분리하거나 여러 교대조로 운영하는 방식이 필요해질 수 있다.
결국 새벽배송사업자는 ‘얼마나 많은 인력을 밤에 투입할 것인가’보다 ‘제한된 야간시간 안에 얼마나 많은 상품을 처리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자동피킹·AMR·MFC 투자 빨라질까
물류자동화 투자가 새벽배송 경쟁력의 핵심 변수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새벽배송은 주문 마감 이후 짧은 시간 안에 상품을 피킹하고 검수·포장해 차량에 상차한 뒤 오전 출근시간 이전까지 배송해야 한다.
특히 냉장·냉동 상품은 상온상품과 달리 온도대별 피킹과 임시보관, 상차시간 관리가 필요해 작업공정이 복잡하다. 야간작업 가능시간이 제한될수록 자동창고(AS/RS), 자동피킹, 컨베이어·소터, AMR(Autonomous Mobile Robot), WMS·WCS와 같은 물류자동화의 경제성이 높아질 수 있다.
점포 활용방식도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대형마트가 보유한 냉장·냉동 진열설비와 후방창고를 단순 매장재고 보관공간에서 온라인 주문을 처리하는 ‘Store Fulfillment’ 인프라로 활용하면 지역별 소규모 저온 MFC가 빠르게 늘어날 수 있다.
대형 중앙물류센터에서 모든 주문을 처리하는 대신 대형마트 점포에서 반경 수km 내 주문을 처리하는 구조가 확대될 경우 배송거리와 기사당 운행시간도 줄일 수 있다. 야간노동시간 제한과 새벽배송 확대라는 두 정책변수가 결과적으로 ‘대형 허브 중심’에서 ‘지역 분산형 저온물류’로의 전환을 촉진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냉동냉장설비 운영도 달라진다. 이 같은 변화는 냉동냉장설비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대형마트는 기존에도 냉동·냉장 쇼케이스와 저장고를 운영하지만 새벽배송 거점기능이 추가될 경우 야간에 후방 냉장·냉동창고와 피킹공간의 이용률이 높아진다.
주간 매장영업 중심으로 설계된 냉동냉장설비가 사실상 24시간 유통·물류설비로 전환되는 셈이다. 특히 피킹을 위해 냉장·냉동창고 출입횟수가 늘어날 경우 Door Opening에 따른 침기부하가 증가할 수 있으며 냉동기 부분부하 운전과 제상운전 패턴도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신선식품을 처리하는 냉장구역에서는 피킹·패킹작업자의 작업환경을 고려해 기존 저온창고와 다른 온도대의 작업공간을 구성해야 할 수도 있다. 온라인 주문량이 많은 점포에는 별도의 냉장·냉동 피킹존이나 냉동·냉장 보관실, 상차 전 임시보관구역(Staging Area)이 필요해질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점포의 기존 냉동기 증설이나 저온저장고 추가설치뿐만 아니라 냉매배관·전력용량·EMS·온도모니터링시스템 개조수요가 발생할 수 있다.
‘배송속도’ 경쟁에서 ‘운영효율’ 경쟁으로
국내 새벽배송은 그동안 ‘몇 시까지 주문하면 다음 날 몇 시까지 받을 수 있는가’를 중심으로 경쟁해왔다면 향후에는 경쟁구도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대형마트 새벽배송이 허용되면 시장참여자가 늘어나지만 야간작업자의 건강권 보호를 위한 시간·횟수 제한이 강화되면 단순히 인력투입을 늘려 배송시간을 앞당기는 방식에는 한계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자동화와 점포형 MFC, 저온물류거점의 분산, 배송노선 최적화, 다회차 배송, 주문 Cut-off 조정 등이 동시에 검토될 가능성이 높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새벽배송시장은 상품을 밤새 처리하는 산업인 만큼 배송규제와 노동규제를 별개로 보기 어렵다”라며 “시장참여를 확대하는 정책과 작업자의 건강권을 보호하는 정책이 함께 추진된다면 기업은 결국 더 적은 야간인력과 작업시간으로 동일한 물동량을 처리할 수 있는 물류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새벽배송 확대논의는 이제 유통규제의 문제를 넘어 콜드체인의 자동화·저온물류거점·냉동냉장설비 운용방식까지 바꾸는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향후 국회의 유통산업발전법과 산업안전보건법·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심의과정에서 영업시간 규제와 노동시간 규제가 어떤 형태로 정리되는지와 함께 대형 유통기업들이 점포·물류센터 운영모델을 어떻게 재설계할지가 국내 콜드체인시장의 새로운 변수가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