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WTO협상 타결에 따라 정부의 수출물류비 지원이 전면 폐지됐다. 항공운송비용은 해상운송대비 6~8배에 달하는 데다 팬데믹 이후 운임은 이전 대비 2~4배 이상 치솟으면서 수출업체들의 부담이 한꺼번에 현실화됐다.
‘품질은 좋은데 가격이 너무 올랐다’는 현지 바이어들의 반응과 함께 주문량이 줄어드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해상운송 전환의 필요성에 대한 현장 공감대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그러나 장거리수송 중 품질 저하라는 오래된 벽이 버티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가 시작됐다. 농촌진흥청 주관의 ‘항공운송 대체 한국형 CA(Controlled Atmosphere)컨테이너 해상운송기술 개발’ 과제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이 주관하며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 세중해운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2026년 4월부터 2027년 12월까지 총 1년9개월간 수행한다. 수확 전 생육관리부터 수확 후 전처리, CA컨테이너 해상운송, 현지유통 실증, 경제성 분석까지 전 과정을 하나로 잇는 한국형 CA 해상운송 수출모델 개발·실증이 최종 목표다.
CA컨테이너는 △산소 △이산화탄소 △온·습도 등을 품목에 맞게 정밀제어해 농산물의 호흡과 노화를 억제하는 기술이다. 일반 리퍼컨테이너가 온도만 제어하는 것과 달리 기체조성까지 관리해 장거리 해상운송에서도 항공운송에 버금가는 품질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경제성도 뚜렷하다. 참외 동남아 수출 기준으로 항공대비 물류비는 절반 이하이면서 상품성은 98% 수준으로 동일하게 유지된다. 고구마 기준 ROI(투자수익률) 분석에서도 항공 -66.7%, 리퍼 92%에 비해 CA컨테이너는 161%로 압도적이다. 탄소배출계수도 항공대비 최대 1/50 수준으로 저탄소 물류체계 구축이라는 시대적 과제와도 맞닿아 있다. 그럼에도 CA컨테이너 해상운송이 현장에서 쉽게 확산되지 못한 이유는 품목별·품종별 전처리기술이 체계화돼 있지 않다는 점과 수입국 현지에서 콜드체인이 단절된다는 점이다. 이번 과제는 바로 이 두 가지 공백을 동시에 채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전처리부터 현지 콜드체인까지 전 과정 연구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은 과제를 총괄하면서 품목별 CA활용 전략 수립과 선도유지조건 구명을 맡고 있다. 주요 실증품목은 고구마와 포도로 두 품목 모두 항공운송 의존도가 높고 생리적 특성이 달라 다양한 조건에서 기술검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선정됐다.

포도는 이산화염소·헥세날 전처리와 CA복합처리로 탈립과 부패를 억제하며 고구마는 수확 직후 큐어링 처리 후 특수보온필름을 적용해 저온장해를 방지한다. 재배단계부터 수출 현지유통까지 일관된 품질관리체계를 수립하는 것이 이번 과제의 차별점이다.
서울대 산학협력단은 수확 후 생리학적 기초연구를 담당한다. 전사체·대사체를 아우르는 멀티 오믹스분석으로 품종별 생리장해 발생원인을 규명하며 장거리 해상운송에 적합한 품종을 선발한다.
그동안 수출의 대부분을 차지해온 일본품종 베니하루카 외에 호풍미·소담미·진율미 등 국내 육성 신품종의 수출적합성을 데이터로 증명하는 것이 핵심미션이다. 축적된 오믹스 데이터베이스는 농촌진흥청 CA수출 통합품질관리 프로그램에 공개돼 수출업체 누구나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세중해운은 현재 36대의 CA컨테이너를 운용하며 194회의 수출실증을 수행한 전문기업으로 이번 과제에서 수입국 현지 콜드체인 연계 복합모델 실증을 담당한다. 이번 과제에서 처음 도입된 A·B·C형 복합모델은 수입국 도착 이후 유통단계까지 콜드체인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를 다룬다.
A형은 CA컨테이너를 현지에 그대로 두고 판매완료까지 보관하는 방식이고 B형은 현지 저온저장고 입고 후 간이 CA를 병행한다. C형은 현지 저온저장고에 입고하는 방식이다. 수입국 인프라 수준에 맞게 모델을 달리 적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IoT 센서기반 실시간 모니터링과 UPS(무정전 전원장치) 기술로 운송 전 구간에 걸쳐 CA환경을 안정적으로 유지한다.

실증·정착을 넘어 정책으로
이번 과제는 도입·연구단계가 아닌 실증·정착단계를 목표로 한다. 연구가 마무리되면 품목별 CA활용 가이드라인과 표준 운송매뉴얼을 APC, 수출통합조직, aT 등에 보급하며 연구결과를 정부정책자료로 연계해 CA컨테이너 보급 지원과 수입국 현지 콜드체인 인프라 구축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CA기술 효과를 현장에서 온전히 발휘하려면 국내 인프라정비와 수입국 현지 콜드체인 연계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연구팀의 공통된 목소리다. 정체된 신선농산물 수출액 15억달러를 돌파하기 위한 수출물류 패러다임 전환의 분기점이 될 수 있을지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