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 냉매관리정책의 무게중심이 바뀌고 있다. 회수, 재활용, 복원, 재사용, 저감까지 이어지는 순환관리체계로의 전환이다. 냉매를 쓰고 버리는 소모품이 아니라 관리해야 할 자원으로 다루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키갈리개정서에 따라 2024년부터 HFCs(수소불화탄소) 소비량을 동결했고 2045년까지 80%를 단계적으로 감축해야 한다. 정부는 지난해 ‘2035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통해 냉매부문 배출량을 2035년 전망치대비 절반 이하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런데 규제 강화 속도에 비해 정작 냉매를 회수하고 처리하는 인프라는 아직 제자리걸음이었다. 20RT 미만 중소형설비는 법정관리 사각지대에 남아 회수 실적 자체가 통계에 잡히지 않았고 회수이력관리도 수기기록 후 사후 입력하는 방식으로 데이터 지연 및 오류가 구조적으로 발생했다. 이에 따라 회수 따로, 재생 따로 돌아가던 냉매관리체계를 ‘전주기관리’로 묶어내는 일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올해부터 ‘국제협약 대응형 불소계 온실가스 저감기술 개발사업’을 신규로 추진하며 냉매 전주기관리체계를 위한 두 개의 R&D가 닻을 올렸다.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KTC)이 주관하는 ‘ICT(정보통신기술)기능이 탑재된 고효율 냉매 회수·재활용기기 개발’과 한국화학연구원이 주관하는 ‘근공비 및 공비 폐냉매의 재생·분리·파괴 통합실증기술 개발’이다.
각각 회수단계와 후단 처리단계를 맡아 폐냉매가 다시 자원으로 돌아오는 순환고리를 완성하는 것이 목표다.
냉매회수기 성능개선·ICT연동 편의성 확보
KTC는 공동연구기관인 키넷, 한국냉동공조시험연구원(K-HVAC)과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ENDIRECTION이 위탁연구기관으로 실증현장 발굴과 사용자 의견수렴을 맡는다. 실증은 인선모터스, BS Eco&More, 순환거버너스, ESRC, 굿바이카 등에서 담당해 회수율 99.5% 이상, 기존대비 회수속도 10% 이상 향상을 목표로 한다. 2026년 4월부터 2028년 12월까지 33개월간 81억원을 투입한다.
이번 R&D는 핵심은 성능개선을 넘어 ‘어떻게 하면 회수를 안할 수 없게 만들 것인가’다. 긴 회수시간과 낮은 효율, 복잡한 절차, 정제·재사용의 불확실성, 인센티브 부재라는 현장의 구조적 비경제성이 회수 누락과 형식적 회수, 고의적 대기방출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끊겠다는 것이다.
기술개발은 크게 두 축으로 나뉜다. 하나는 회수기 자체의 성능개선이다. 배관 지름을 기존 1/4인치에서 3/8인치로 넓혀 유량을 약 2.2배 늘리며 딥튜브구조로 고속충전 시에도 회수 말기까지 속도 저하를 억제한다. 플로트·저울센서를 이중으로 감지해 과충전을 사전 차단하는 안전장치도 갖췄다. 소형부터 대형까지 4개 등급 회수기 72대(준중형 50대, 중형 20대, 대형 2대)를 실증기업 현장에 보급해 검증할 계획이다.
다른 하나는 ICT다. 그동안 회수작업은 사후 수기작성 방식이라 실제 작업 당시의 압력·온도·중량 변화가 남지 않아 완전 회수 여부를 제3자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이번 과제는 이런 데이터를 자동기록하는 ICT계측세트를 회수기에 결합해 작업자는 현장에서 결과만 확인·확정하면 된다. 데이터는 국가 냉매관리시스템(RIMS)으로 바로 연동된다.
장재훈 KTC 본부장은 “냉매회수는 국가적으로는 온실가스 배출을 직접 막고 냉매를 다시 자원으로 활용하는 중요한 감축활동”이라며 “이번 과제를 통해 우리나라의 냉매 전주기관리체계가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모델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재생냉매 품질개선·공정경제성 확보
한국화학연구원은 공동연구기관인 선진환경, YM레미, 창성, 케이엔알,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과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KAIST, 인하대, 워터트리네즈가 위탁연구기관으로 참여하며 한국냉매관리기술협회가 용역을 수행한다.
두 냉매가 특정 비율로 섞여 하나의 물질처럼 거동하는 근공비·공비 혼합냉매는 기존 재생기술로는 성분 분리가 어려워 회수됐어도 결국 소각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R&D를 통해 재활용도 자원화도 못 한 채 버려지던 혼합냉매를 자원의 순환고리 안으로 끌어들일 계획이다.
먼저 선진환경의 분별액화와 YM레미의 증류로 폐냉매를 1차로 걸러낸다. 그리고 화학연구원이 개발하는 분리막과 YM레미의 추출증류기술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혼합냉매의 성분을 걸러낸다. R410A에서 GWP가 낮은 R32만 순도 99.5% 이상, 회수율 90% 이상으로 따로 분리하며 기존 공정보다 에너지소비를 10% 이상 줄이는 것이 목표다.
GWP가 높아 재사용이 어려운 나머지 성분은 창성의 SiC 히터반응기와 HF스크러버를 거쳐 무해가스로 완전히 분해된다. 목표는 파괴효율(DRE) 99.99% 이상이다. 재생·분리·파괴 전 과정은 케이엔알이 실시간 모니터링하며 KTL에서 LCA·경제성 평가, 인하대학교가 AI예측 최적화를 진행한다. 하나의 실증 플랫폼(All-in-One)에서 검증하며 재생냉매는 연간 100톤, 파괴는 연간 5톤 규모까지 실증한다는 계획이다.
박재성 화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폐냉매는 온실가스 감축과 자원순환을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중요한 자원”이라며 “재생냉매 품질과 공정과정의 경제성을 동시에 확보한 범용냉매기술플랫폼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정조준
KTC 주관과제가 냉매회수량과 회수데이터를 늘리는 냉매 전주기관리의 ‘출발점’이라면 화학연구원 주관과제는 회수된 폐냉매를 실제로 자원화하는 ‘결승점’이다.
KTC는 두 과제가 목표대로 진행될 경우(폐냉매 회수율 40% 가정), 냉매생산·처리단계 에너지소비를 9.0% 절감하며 냉매소비량을 연간 3,570톤(약 9%)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온실가스 약 836만톤CO₂eq에 해당하며 2030년 국가 NDC목표 달성에 약 3% 기여할 것으로 추정된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올해 추진 중인 ‘냉매관리법’ 제정, 한국환경공단의 ‘냉매 전주기관리체계 시범사업’과 맞물려 이번 R&D가 국산 기술기반 냉매순환생태계를 얼마나 빠르게 현장에 안착시킬지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