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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속 녹아버린 콜드체인, 대책은

고온기후 반영한 냉매·포장재 관리기준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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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배송으로 도착한 상자를 열었더니 드라이아이스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냉동식품은 물컹하게 녹아 있었다”, “상자 밑바닥이 흥건히 젖어 손을 대자 그대로 찢어졌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 잇달아 올라온 컬리배송 후기들이다. 이례적으로 길었던 이번 여름 폭염 속에서 컬리가 냉동식품 배송 품질논란에 휩싸였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는 컬리직원으로 추정되는 이용자가 비용절감을 이유로 보냉재 사용을 줄이고 있다는 취지의 글을 올려 논란이 더욱 확대되고 있다. 


컬리의 관계자는 “비용절감을 위해 보냉재를 축소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며 오히려 드라이아이스와 아이스팩 투입량을 기존보다 확대 운영하고 있다”며 이 주장을 정면으로 부인했다. 


이번 논란을 컬리 한 곳의 관리소홀로만 볼 수는 없다는 시각도 있다. 드라이아이스 수급난과 포장재 단열문제가 겹치면서 폭염이라는 변수 앞에서 식품 콜드체인이 가진 취약점이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물류관점 안전관리 부재

김대진 인하대 아태물류학부 교수는 이번 논란을 개별기업의 일탈이 아니라 산업 전반의 구조적 공백이 표면화된 사례로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기록적 폭염과 열대야가 상시화되고 온라인 냉장·냉동주문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이를 검증할 공통기준 자체가 없다 보니 폭염이라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업체별 품질편차가 그대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특히 국내 인증제도가 HACCP 등 제조·가공단계에 집중돼 있어 물류센터 출고부터 소비자 수령까지 배송·포장·보냉 전주기의 온도관리를 담보하는 물류관점의 인증체계는 사실상 부재하다는 점을 근본원인으로 짚었다.


그러나 포장재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사태를 산업구조 문제로 보기 어렵다”라며 “컬리처럼 자사 차량으로 새벽배송을 운영하는 업체는 물류센터 출고부터 배송까지 전 과정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만큼 여러 택배사가 뒤섞여 배송하는 구조적 문제와는 결이 다르다”고 말했다.


특히 컬리 정도의 인력과 자본, 축적된 데이터를 가진 기업에서 이런 논란이 반복됐다면 운영상의 허점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두 시각은 상충하기보다는 서로 다른 층위를 짚고 있다. 개별기업의 운영 디테일에서 허점이 발견됐다는 점과 그 허점을 걸러낼 산업차원의 검증장치가 없다는 점은 둘 다 사실일 수 있다.




냉매·포장재 한 세트로 설계해야

포장재 관점에서 본 이번 사태의 본질은 ‘얼마나 넣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넣었느냐’의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콜드체인 패키징기업 신트로밸리 최동호 대표는 “냉매와 포장재, 두 축이 동시에 어긋난 문제”라고 진단하며 “냉동식품에 맞지 않는 온도대의 냉매를 개수로만 관리해 왔고 그 냉매를 열이 새는 상자에 담아왔다”고 밝혔다. 이어 “두 문제를 따로 관리하니 어느 쪽도 검증되지 않았다”라며 “냉매와 포장재는 한 세트로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폭염이 시작되고 업체들이 내놓은 대응은 대부분 드라이아이스와 아이스팩 투입량을 늘리는 것이었다. 문제는 드라이아이스 수급난이다. 드라이아이스 주문은 폭증했지만 원료공급이 따라오지 못했고 화주사들은 모자란 만큼을 아이스팩으로 채울 수밖에 없었다. 


드라이아이스의 원료인 액화탄산은 정유·석유화학·암모니아 공정의 부산물이라 공급량이 수요와 무관하게 결정되며 정기보수나 가동률 조정이 여름철 수요 급증과 겹치면 공급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에 따라 여름철에는 매년 수급난과 단가폭등이 반복돼 왔다.


여기에 외기온도가 오르면 승화손실도 커진다. 창고보관과 상·하차 대기, 센터 내 이동단계마다 조금씩 사라져 성수기에는 더 비싼 값에 더 많이 사서 더 많이 날리는 상황이 반복된다. 이에 따라 드라이아이스가 부족해지면 소량의 드라이아이스에 아이스팩을 섞는 조합, 또는 아이스팩만으로 채우는 조합, PCM(상변화물질)을 활용한 조합 등으로 나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 또 다른 문제는 사전결빙(정온화)이다. 아이스팩이나 PCM은 완전히 얼어야 잠열을 100% 쓸 수 있다. 성수기에 물량이 몰려 냉동고 회전이 빨라지면 덜 언 상태로 투입되는 일이 생긴다. 겉은 차갑지만 속은 아직 액체인 냉매는 성능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 장부상으로는 정량을 넣었는데 현장에서 문제가 생기는 대표적인 원인이다.


단순히 ‘업체가 보냉제를 아꼈다’로 정리하기엔, 그 안에 얽힌 변수가 많다.


제품특성에 맞는 냉매선택 중요

전문가들은 현재 가장 좋은 조합은 드라이아이스와 PCM을 함께 쓰는 것이라고 판단한다. 드라이아이스가 초기 품온을 빠르게 끌어내리고 PCM이 그 온도를 붙드는 식으로 역할이 나눠 드라이아이스 사용량은 줄이면서도 유지시간은 늘어난다. 한여름 극한구간을 제외하면 PCM팩만으로 구성하는 조합도 대안이 될 수 있다. 고단열 포장재가 전제돼야 한다는 조건은 있지만 성능과 비용 모두에서 유리하며 다회용 회수체계가 붙으면 총비용도 낮아질 수 있다.


친환경 보냉재 전문기업 아이에코랩 박홍구 차장은 “드라이아이스는 승화하며 질량 자체가 사라지기 때문에 후반부로 갈수록 성능이 급격히 떨어지는 반면, PCM은 질량을 유지한 채 열을 흡수하는 방식이라 성능이 서서히 예측 가능하게 낮아진다”고 밝혔다.


아이스팩 자체가 나쁜 냉매는 아니다. 물이 0℃에서 상변화하는 특성은 냉장상품, 즉 0℃ 안팎의 온도를 지켜야 하는 품목에는 오히려 이상적이다. 문제는 냉동식품처럼 -18℃ 이하를 요구하는 품목에 0℃ 냉매를 투입한 온도 미스매치였을 뿐 소재 자체에 결함이 있었던 게 아니다. 


냉동 초저온에는 드라이아이스를, 일반 냉동의 장시간 유지에는 PCM을, 냉장에는 그에 맞는 온도대의 냉매를 골라 쓸 수 있는 선택지를 갖추는 것이 폭염리스크에 대한 대비가 될 수 있다. 특정 냉매를 없애거나 무작정 늘리는 게 아니라 지켜야 할 온도에 맞는 냉매와 포장재를 정확히 골라 쓰는 일이 중요하다.


인증제 통한 콜드체인 검증 필요

앞으로 이와 같은 문제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과제는 무엇일까. 


김종경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 패키징기술센터장은 “단순히 아이스팩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라스트마일의 실제 노출환경(데이터)을 반영해 포장·운영·데이터·책임체계를 함께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나라에서 고질적으로 발생하는 문전방치, 배송지연, 차량·터미널 상온노출은 단열포장 단품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배송프로세스의 관리실패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포장이 냉장차를 대체하게 되면 냉매만 더 넣는 악순환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 PCM 전처리, 배치, 출하대기 최소화, 제품·PCM 초기온도 확인, 문전 노출시간 통제, 실시간 데이터검토 같은 운영 전반의 사항에 대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김대진 교수는 “물류관점의 콜드체인 안전관리 인증제 도입과 계절별·이상기온 대응 온도관리 가이드라인 표준화가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지난해 말부터 국토부 과제로 연구되기 시작한 ‘콜드체인물류 안전관리 인증체계 구축 및 시험평가 기술개발’은 포장·운송·보관·모니터링 등 물류 전 과정의 온도관리 역량을 기준에 따라 평가하고 인증하는 제도다. 지금까지 국내 콜드체인관리가 개별기업 경험과 노하우에 의존해왔다면 인증제는 이를 객관적 기준과 데이터로 검증받도록 하는 장치다.


인증체계가 실제로 자리 잡으려면 모니터링기술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물류업계의 한 전문가는 “이차전지·의약품분야에서 이미 확산되는 IoT 온도모니터링기술을 반복 회수되는 다회용 보냉용기와 결합하면 식품분야에서도 센서비용을 여러 배송에 분산시켜 경제성을 확보하며 기술수용성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전국에 획일적인 ‘여름용 규격’을 얹는 방식이어선 안 된다. 


김종경 센터장은 “서울 도심 당일배송, 제주 항공환적, 장거리 상온택배, 냉장 새벽배송 등 경로에 따라 수없이 많은 노출환경이 생성된다”라며 “이에 맞춘 물류데이터 분석을 통한 경로별 위험도와 성능수준 등을 따로 설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기온은 계속 오르는데 검증기준과 설비·장비에 대한 투자는 몇 년째 제자리걸음이다. 보냉재를 더 넣는 방식으로 버텨온 관행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지켜야 할 온도에 맞는 냉매를 고르고 열이 새지 않는 포장재에 담는 일을 표준화하려면 그에 걸맞은 투자가 뒤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내년 여름에도 같은 논란이 되풀이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