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온저장 한계 넘는 ‘CA기술’ K-농산물 수출경쟁력 강화 열쇠

질소발생기·센서·제어기술 등 CA기술 국산화 성공
저장기간 연장⋯ 농산물 수급안정·농가소득 증가
CA기술 보급 확대, 표준화·기술고도화·인프라 관건

2026.04.07 18:58:02


농산물은 수확 직후부터 살아 숨 쉬며 노화가 시작된다. 호흡을 하고 에틸렌을 내뿜으며 조직이 무너진다. 이 과정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억제하느냐가 수확 후 관리기술의 핵심이다.


한국 신선농산물의 수확 후 손실률은 15~25%에 달한다. 미국·네덜란드 등 농업 선진국의 5~10%에 비해 두 배 이상 높다. 농업기술은 세계 10위권이지만 농산물 수확 후 관리기술에서는 선진국과 격차가 크다.


CA(Controlled Atmosphere: 기체조성조절)기술이 이 격차를 좁힐 핵심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저장공간 내 산소와 이산화탄소 농도를 정밀하게 제어해 농산물의 호흡과 노화를 억제하는 기술로 미국은 농산물 저장의 40%, 유럽은 30%, 일본은 10%에 CA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CA저장 보급률은 0.3% 수준에 불과하다.


최근 이러한 상황을 바꾸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국산 CA저장기술이 완성돼 전국 보급이 이어지고 있으며 CA컨테이너를 활용한 수출실증이 200회를 넘어서며 참외·멜론·딸기·고구마 등에서 구체적인 성과가 쌓이고 있다. 올해 3월에는 산·학·연·관이 함께하는 ‘CA기술포럼’이 출범했다. 


CA기술의 원리와 구조, 최근 R&D성과와 수출실증, 정부 지원체계, 향후 과제와 비전 등을 종합 점검했다.




CA핵심, 기체별 정밀제어

저온저장이 온도를 낮춰 호흡속도를 줄이는 방식이라면 CA기술은 공기 조성 자체를 바꾼다. 농산물마다 구체적인 수치는 다르지만 산소를 1~5%, 이산화탄소를 1~15%로 조정하면 농산물의 호흡활성이 3~10배 억제되고 에틸렌 생성이 2~5배 줄어들며 부패 미생물 활성도 2~3배 억제된다. 온도와 기체조성을 동시에 제어함으로써 저장한계를 대폭 끌어올릴 수 있다.




CA저장고는 네 가지 핵심요소로 구성된다. △고기밀 저온저장고 △압력제어장치(공기주머니·압력밸브) △질소발생기 △통합센서(온도·습도·산소·이산화탄소) 등이다. 이중 기밀확보가 가장 까다롭다.


박천완 국립농업과학원 수확후관리공학과 농업연구사는 “저장고 내부 산소농도를 2% 수준까지 낮춰야 하기 때문에 미세한 틈새 하나도 허용되지 않는다”라며 “기밀검사에서 압력이 규정치 이하로 떨어지면 그 저장고는 CA저장고로 쓸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한 기체 성분별 효과와 부작용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CA저장의 핵심 노하우다. 산소를 낮추면 숙성 지연·엽록소 붕괴 지연 등 효과가 있지만 지나치게 낮으면 이취 발생·발효와 부패를 유발한다. 이산화탄소를 높이면 미생물 성장 지연·에틸렌 영향 억제 효과가 있지만 과도하면 갈변 등 저장장해가 생긴다. 이 때문에 품목마다 정밀하게 조정된 CA조건이 필요하며 이것이 CA기술의 전문성과 난이도를 결정짓는다.




능동형 CA, 장해 발생률 최소화·전기료 절감

한국에서 CA저장 상용화가 처음 시도된 것은 1991년이다. 그해 가을 후지 사과를 CA저장하고 이듬해 최초 CA브랜드 사과를 출시했지만 내부갈변 장해가 잇달아 발생하며 시장에서 외면받았다. 1993~1996년 두 번째 도전도 같은 문제를 극복하지 못했다. 당시 전문가들은 △적정 CA조건 자료 부재 △기술 축적 미흡 △설비업체의 기술 전수 능력 부족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외국기술을 그대로 들여왔을 뿐 한국형 조건을 만들어내지 못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임관빈 쿨테이너 대표는 “설비와 기술을 100% 수입에 의존한 탓에 고장 한 번에 수천만원의 A/S 비용이 청구됐으며 이를 감당하지 못한 농협·농업법인들이 잇달아 운영을 포기했다”라며 “국내 설치업체도 없고 비용도 고가인 CA저장고는 ‘한국 실정에 맞지 않는다’는 인식이 굳어졌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후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이 10년 이상의 연구 끝에 질소발생기·기체환경 측정센서·자동제어기술 등을 국산화에 성공했다. 2016년 1세대 보급형 CA저장고 개발을 시작으로 2021년 2세대 능동형 CA저장고(DCA-RQ: Dynamic CA based on Respiratory Quotient)까지 나왔다. 


능동형은 CO₂ 발생량과 O₂ 소비량의 비율인 호흡률(RQ)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RQ값이 1을 초과해 혐기성 호흡이 시작되는 순간 산소농도 설정값을 자동으로 높이고 호흡이 안정되면 다시 낮추는 방식이다. 


박천완 연구사는 “능동형 CA는 일반 CA저장대비 장해 발생률이 최소화되고 질소발생기 가동 횟수가 줄어 전기료도 절감된다”고 설명한다.


현재 국내에는 능동형 CA저장고를 포함해 한국형 CA저장고 92대가 운영 중이며 올해 배추를 대상으로 시범적으로 중대형 CA저장고 2대 보급이 추진될 예정이다.


제조기업들의 국산화도 성과를 내고 있다. 쿨테이너는 7년 연구 끝에 독자적인 기밀방열문을 개발해 국내 10대 특허에 선정됐고 수입제품 대비 1/3 비용 설치를 실현하며 국내에서 100여동 이상을 시공했다. 주일플랜트는 제상 중 온도변화를 1℃ 이내로 억제하는 핫가스 제상시스템을 CA저장고에 결합해 장기저장 성능과 에너지효율을 동시에 확보했다.



저장기간 1.5배 연장⋯ 현장데이터 증명

CA저장기술의 경제적 효과는 현장 데이터로 확인된다. 사과를 CA저장고에 8개월 저장 후 출하한 결과 감모율이 1.8%로 일반 저온저장(3.7%)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저장기간도 9개월로 늘어 저온저장(6개월)대비 1.5배 연장됐으며 농가소득도 증가했다. 관능평가에서도 일반저장고와 비교해 80% 이상이 CA저장제품을 최우수로 꼽았다. 일반 저온저장고에서 5월이면 맛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사과를 9~10월까지 보관할 수 있어 가격이 높을 때 출하하고 나머지 기간에는 배추 등 다른 품목을 저장하는 순환보관도 가능하다.


샤인머스켓에서도 성과가 확인됐다. 주일플랜트 CA저장고를 도입한 동트면 영농조합법인은 기존 이듬해 2월이던 저장 한계를 4월까지 2개월 연장했다. 수출 가능기간도 그만큼 늘어났다. 


충북원예농협 보은거점 APC는 국립농업과학원이 개발한 국내 기술이 적용된 최초의 대형 CA저장고 4동을 2023년 도입해 ‘CA저장사과’ 브랜드로 유통업체에 판매하고 있다. 초기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국립농업과학원과 기술교육·자문을 통해 운영기준을 체계화했다. 


심진현 보은거점 APC 센터장은 “처음에는 CA저장기술을 생소하게 느끼는 농가도 많았지만 실제 저장 후 출하된 제품의 품질을 확인하면서 긍정적인 반응이 늘어나고 있다”라며 “CA저장고 입고물량에는 일반 저온저장대비 높은 수매단가를 적용하고 있어 농가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참외, 싱가포르 18일 운송 후 2일 완판

CA기술이 가장 주목받는 분야는 수출이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저장유통과는 2021년부터 전략 품목별 최적 CA조건과 품질유지기간을 담은 데이터베이스 25종을 구축하고 단일 및 혼합품목 실증수출을 200회 이상 시행했다.


참외의 싱가포르 수출실증은 CA기술의 가능성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리퍼컨테이너로 수출했을 때 손실률이 25~40%에 달하던 참외가 CA컨테이너(산소 5%, 이산화탄소 5%, 온도 5~7℃) 적용 후 18일 운송에도 품질을 유지해 현지 매장에서 2일 만에 완판됐다. 


멜론·수박의 중동 수출실증에서는 수확작업부터 아랍에미리트(두바이) 도착까지 33일이 소요됐으며 예냉+CA처리 조건에서 가장 우수한 품질이 확인됐다. 멜론 2.3톤, 수박 1.7톤, 씨 없는 수박 1.2톤의 혼합선적도 성공했다.


민간차원에서는 세중그룹이 선두다. 36대의 CA컨테이너를 운영하며 2022년 이후 32작목 68품종 1,800톤을 12개국에 335TEU 수출해 790만달러(약 100억원) 규모의 수출실적을 달성했다. 




세중그룹은 CA컨테이너 내부를 저산소 환경으로 전환하는 플러싱(flushing) 소요시간을 세계 통용 기준 6시간에서 3시간으로 단축한 이동식 질소발생기를 자체 개발하는 등 CA관련 특허 5건도 확보했다. 또한 해상운송 중 전력차단에 대비한 UPS(무정전 전원공급장치)도 개발해 원거리 수출의 안정성을 높였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은 수출데이터를 바탕으로 품목별 CA수출모델을 완성했다. 딸기는 홍콩·태국으로 12~3월, 참외·멜론·수박은 싱가포르·인도네시아로 2~9월, 버섯은 유럽으로 연중, 고구마는 태국·캐나다·유럽으로 10~4월, 포도는 미국·호주로 9~3월에 수출하는 품목별 모델이다. 저장성이 낮은 품목은 동남아 단거리에서 고중량 품목(수박·멜론 등)은 항공이 사실상 불가해 CA컨테이너가 유일한 대안이다.


CA포럼, 산·학·연·관 협력 플랫폼

지난 3월19일 충북 청주에서 열린 ‘CA기술포럼’ 창립총회에는 수출·물류기업, 연구자, 학계전문가, 정책담당자 등 100여명이 모였다. 단순한 학술단체 출범이 아니라 그간 제각각 움직이던 산·학·연·관이 처음으로 하나의 플랫폼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기존 학회·협회가 학술대회·논문발표 중심인 것과 달리 CA기술포럼은 △표준화 △조사 △용역 △컨설팅 △정책 제안 등 산업화와 사업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명수 CA기술포럼 회장(세중해운 대표)은 “기술이 현장에서 부가가치와 일자리로 이어지도록 할 계획”이라며 “신선농산물의 저장·유통·수출 전 과정을 아우르는 CA 밸류체인 구축이 최우선 목표”라고 밝혔다. 


홍윤표 CA기술포럼 정책기획부장은 “CA포럼은 단기적으로 품목별 CA표준 프로토콜 제시와 실증사업 확대를, 중기적으로는 국가표준·인증제도화와 CA데이터 플랫폼 구축을 추진할 계획”이라며“장기적으로는 한국을 동북아 CA저장·물류·장비 허브로 성장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CA기술 산업화, 이해관계자 동참 중요

정부도 CA기술 확산에 적극 나서고 있다. aT는 수출농산물 저온수송장비 임차료를 국비 80%로 지원하는 ‘신선농산물 저온유통체계 구축’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이번 사업에는 CA저장고·질소발생기 구축비용을 국비 70%로 지원하는 ‘CA유통지원’사업도 포함돼 있다. 


농진청 국립농업과학원도 여름철 배추 수급 안정화를 위한 중대형 CA저장고 시범 보급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아직 한국의 CA저장 보급률은 0.3%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CA저장기술 확산이 더딘 이유로 △높은 초기 투자비용 △기밀설계·기체제어분야 전문인력 부족 △품목별 적정 운영 노하우 미축적 △CA컨테이너 수출 납기 탄력성 부족 △산지 인프라 미비 등을 꼽는다.


CA기술은 연구기관·제조기업·물류업체·농가·정부 등 다양한 주체가 얽혀 있는 분야다. CA기술이 한국농업의 새로운 인프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표준화 △기술고도화 △콜드체인 인프라 확충 등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연구기관이 기술을 개발해도 제조기업이 이를 제품으로 구현하지 못하면 현장에 닿지 않고 정부가 지원사업을 운영해도 농가가 운영 노하우를 갖추지 못하면 효과가 반감된다. 물류기업이 CA컨테이너를 보유해도 산지 APC에 콜드체인 인프라가 없으면 수출로 이어지지 않는다. 


어느 한 축만 앞서 나간다고 해결되지 않는 구조다. 제조기술 국산화 완성, 다년간의 연구개발과 수출실증, 산·학·연·관이 모인 CA기술포럼 창립 등은 국내 CA기술 산업화의 여러 축이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미국 40%, 유럽 30%를 따라잡기까지 가야 할 길은 아직 멀지만 방향만큼은 뚜렷해졌다. K-푸드가 세계를 두드리는 지금, CA기술은 그 문을 여는 열쇠가 될 것이다.



김정현 기자 jhkim@coldchain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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